EBS 지식채널e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간송 전형필에 대한 책을 최근 읽었다.
조선 10대 갑부이면서도 조선의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산을 아끼지 않고 수집한 그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서울 아파트 수십채, 수백채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지켰던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에서 자주 보는
고려청자 상감운학매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국내에 남을 수가 있었다.
책과 TV에 여러차례 소개가 되었고
그가 남긴 문화재는 그가 남긴 또하나의 유산인 간송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의 노력과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 그의 선택
재산이 많다고 누구나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산이 많은 다른 조선의 갑부들 중에서 그들의 재산을 뜻깊은 일에 사용한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부는 재산을 더 증식하기 위해, 일부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는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
만약 일부가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그와 같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독립이 여의치 않자 대량으로 처분하기 위해 문화재를 내놓았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보건대
간송 전형필이 이를 끝까지 지켜냈다는 것은
그는 '독립'(할때 문화재의 가치가 상승할 것을 노린)과는 관계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일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비난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재산을 갖고 있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할테니, 그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조용히 되물어보자.
'재산을 갖지 못한 현재의 당신(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조그만 일이라도 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때 그 자리에서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역시 못할 것이다'
2. 외사촌 형. 월탄 박종화
역사소설로 유명한 월탄 박종화는 간송 전형필의 외사촌 형이다.
한세대 이전의 분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인 박종화는
요즘 잘 읽히고 있는 이문열의 삼국지 한세대 이전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삼국지 연의를 지은 분이다.
어린 시절 주로 외사촌 형에게서 책을 빌려 읽은 전형필이
자연스럽게 민족의식과 시대에 대해서 고민했을 것이라고 충분히 상상해봄직하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토양과 배경이 훗날 그를 이끈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시대에 유입되었을때
'나는 부르주와 배경의 사람이니 내가 어줍잖게 사회주의 흉내를 낸다고 한들, 그것은 진심으로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차라리 절필하느니 못하다. 차라리 민족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역사소설을 쓰겠다.'라는 말을 던진
솔직한 박종화의 에피소드를 보건대
그들의 집안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워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보여주는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명문가란 이런 집안을 일컫는 것이리라.
덧) 요즘 결혼 적령기에 오고가는 말 중
흔히 '집안이 좋다'라는 말이
언제부터 '돈이 많은 집안'의 동의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씁쓸하다. 그냥 '돈'이 많다고 하자.
3. 그의 인생. 그의 마무리
이미 돌아가셨지만 개인적으로 전형필 그 분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전 재산을 투자한 박물관이 남았지만
해방직후 6.25를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고, 또한 토지개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재산이 다 없어진 상황에서
그의 말년에 동포와 민족, 국가는 그에게 충분히 감사를 표했을까
그는 스스로 행복하게 그 결과를 바라보았을까
아무도 찾지 않고 오히려 경제개발로 분주한 조국의 모습속에서 오히려 그늘에 위치하지 않았을까
혹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비록 대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마음 깊은 한 구석에서
그 분이 꼭 행복하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마 다음의 사진을 보면 그랬으리라.
고맙습니다.